제목 [토요단상] 결혼사유가 이혼사유2019-08-02 09:2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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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자가 잘생겨서 결혼했더니 잘생겨 먹어서 들러붙는 여자들 때문에 이혼을 결심했다고 한다. 단순하고 박력 있는 한 남자가 세세하게 챙겨주는 여자를 보고 옆에서 잘 챙겨 주리라 믿어 결혼했건만 평생 따라다니며 잔소리해대는 데에 넌덜머리를 내며 이혼을 하게 되었다. 돈이 많아 보여 덜컥 결혼하여 붙잡았는데 사업 실패 후 땡전 한 푼 없이 초췌해진 모습과 흐트러진 몰골이 보기 싫어 오매불망 이혼을 생각하며 살고 있다고 한다. 천 근보다 한 근 더 무거워 보이는 신중한 모습에 남자다움을 느껴 결혼했더니, 집안에 처박혀 꼼짝도 하지 않고 늘그막에 꼬박꼬박 밥 챙겨줘야 하고 잔심부름 시켜대며 인상 쓰는 얼굴을 맞대는 것이 미칠 것 같아 차라리 이혼하고 싶다고 한다. “남자가 술 한두 잔쯤은 할 줄 알아야지” 하며 호기롭게 술자리를 이끌어 가는 품새를 좋게만 보았는데, 허구한 날 술 먹고 들어와 폭력과 행패를 부려대니 살 수가 없어 이혼한다고 했다.

터프한 오빠가 만날 때마다 쿨하고 뿅 가게 해 주는 바람에 결혼하면 끝내줄 줄 알았는데 너무 터프하게 막 대해줘서 대책이 안 서고 못 살겠다 한다. 핍박하는 부모님이 싫어 도망치듯 결혼하여 새 가정을 꾸렸건만, 부모님보다 더 무섭게 때리며 학대하는 남편을 어쩌지 못해 이혼을 결심한 사람도 있다. 남자가 신체 건장하고 든든해 보여 결혼했더니 밤마다 지척에서 코고는 소리가 오장육부를 뒤흔들어 못살겠다는 부인도 있다. 얌전해 보이고 조용해서 소리 소문 없이 잘 살아보려 했는데 알고 보니 도둑고양이처럼 도박에 빠져 가산을 탕진하고 있으니 하루빨리 갈라서야겠다는 부인이 있다.

결혼 전에 보았던 상대방의 모습이 맞기는 맞나? 무얼 잘못 보았던가? 이 사람이 날 속였나? 이리저리 살펴보아도 딱히 답이 나오지 않는다. 어쩌면 그렇게 좋아했던 모습이 반대로 작용하여 나타나게 되는 걸까? 마치 예정되고 준비되어 있는 듯하다. 이러한 경우 결혼은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했다고 말하겠지만 실제 살아가는 모습을 놓고 볼 때 불행하게 살기 위해서 결혼한 것이 틀림없다. 살아온 나날의 순간순간을 행복하기 위해 애를 썼다기보다 자신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불행해지는 길을 선택하여 반복하며 살아온 것이다. 

누구나 자신이 잘 되었으면 하는 근본적인 소원을 가지고 있다. 잘 사는 사람들은 소원을 이루는 현실적인 여건을 하나둘 만들어 가지만, 잘 못 사는 사람들은 여건을 마련하기보다 바라기만 한다. 여건이 부족할수록 바람의 정도는 더욱 커진다. 애초 상대방 속에 함께 들어있던 결혼사유와 이혼사유 중에서 결혼사유를 부풀려서 크게 사게 되고, 이혼사유는 가능성을 낮게 보게 되어 희망에 찬 결혼을 하게 된다. 

결혼이 자동적으로 행복을 가져다주지는 않는다. 결혼함으로써 연애시절 서로에게 잘 보이려고 조심하던 노력은 사라지고 적나라한 전체 모습이 드러나 이혼사유가 보이기 시작한다. 가슴 깊이 품어 익숙하게 느껴지는 실망과 좌절이 작동하기 시작한다. 이혼사유가 결혼사유를 능가하여 가속적으로 축적된다. 드디어 결혼사유가 이혼사유로 확정되어 돌이킬 수 없는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결국 불행한 삶의 경험이 많은 사람은 불행에 익숙해져서 느껴지지 않는 무의식 속에 불행을 찾는 눈을 만들게 된다. 무의식의 눈이 멀쩡하게 뜬 눈보다 더 은근하며 끈질긴 위력을 발휘하여 결혼사유 속에서도 이혼사유로 발전할 수 있는 상대를 고르는 것이다. 평소에 좋은 마음과 편안한 관계가 중요하다는 이유를 설명해주는 현상이다. 결혼의 이유가 이혼의 이유가 되지 않도록 배우자의 좋은 면을 크게 볼 일이다.
김영호 <사>한국가족상담협회 대구가족상담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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