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토요단상] 내 몸 네 몸처럼2019-08-02 09:2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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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을 도와준다는 것은 쉽지 않다. 도움을 주려면 여러 측면에서 많은 신경과 몸을 써야만 한다. 도움을 준다고 할 때, 도움 받는 사람에게 실제로 도움이 되도록 하려면 상대방에게 잘 맞춰주어야 한다. 잘 맞춰주기 위해서는 상대가 달라는 바로 그것을, 시간에 맞게, 원하는 방식에 따라, 원하는 양만큼, 진정으로 돕는 마음을 가지고 주어야 한다. 상대방이 달라는 것 말고 자신이 줄 수 있는 것, 심지어 자신이 주고 싶은 것을 주는 것은 도움을 주는 게 아니라 자신을 만족시키고자 하는 의도가 작동되고 있는 것이다. 상대방을 이용해서 자신의 만족을 돕는 셈이다. 상대방의 욕구에 맞춰 제공하지 않고 자신이 줄 수 있는 것을 주는 것은 자선이라고 한다.

아이를 자선방식으로 키우는 부모가 많다. 아이에게 맞춰주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아이가 부모의 구미에 맞춰야 하는, 아이로서는 힘겨운 상황이 양육 현장에 비일비재하다. 정작 아이는 그런 상황이 기가 막히게 모순된 것인지도 모르고 일방적으로 당하며 고생스럽게 자란다. 어린 아이가 어찌 막강한 부모의 의도를 거스를 수 있단 말인가! 양육자인 엄마를 알아보는 순간부터 유아는 한없이 갑갑할 것이다. 편안함을 위협하는 상황이 끊임없이 유아의 안팎에서 일어나건만 정작 자신은 할 수 있는 능력이 아무것도 없으니 오죽 답답할 것인가. 오직 엄마만을 통하여 해결을 기대해야 하니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을 엄마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 자신의 딱한 형편을 극복하는 유아의 인식은 엄마를 자신의 일부로 삼아 둘이 이루는 하나라는 공동체를 만들어 엄마가 자기 몸과 같이 작동하기를 바란다. 이런 상황에서 엄마는 과연 유아의 딱한 사정을 충분히 이해하고 적시에, 유아의 욕구에 맞추어 적절한 것을 제공하는지 되짚어 볼 일이다. 

나 말고는 모두 남이라고 한다면, 남을 도와준다는 것은 남에게 나를 주는 것이다. 나를 준다는 것은 내가 가진 소유물인 유형의 것에서부터 무형의 것인 시간, 노력, 생각, 사랑 심지어 삶과 생명까지도 줄 수 있다. 이 모든 것이 주는 사람의 요소를 담뿍 담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요소를 배제하고 받는 사람의 요소를 반영하여 제공한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자신의 것을 제공하다보면 어느새 자신의 특성을 충분히 발휘해가며 상대방에게 주고 있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일어나기 쉽다. 부지불식간에 엄마의 의도를 유아에게 강제하는 상황이 되어버린다. 유아가 엄마의 의도에 충실히 따르다보면 유아는 자신의 소양 개발을 멀리하고 엄마의 분신으로 어린 엄마처럼 자라나게 된다. 유아가 자신의 원래 모습을 잃어버리는 결과가 일어나고 만다.

유아는 엄마를 생명처럼 필요로 해서 엄마와 공생하는 공생기라는 발달단계를 보낸다. 이 시기에 엄마는 유아의 바람처럼 엄마의 몸을 유아의 몸처럼 쓸 수 있게 내어줘야 한다. 내 몸을 네 몸처럼 내어주는 것이다. 유아가 엄마의 권능을 가지고 자신의 상황에 대처함으로써 전능감을 맘껏 누리는 것이 필요하다. 이런 식으로 엄마를 충분히 겪은 유아는 다음 단계인 격리-개별화 단계에서 의존했던 엄마로부터 산뜻하게 떨어져 나와 심리적인 탄생을 맞게 되는 것이다. 엄마로부터 충분히 받아야 엄마로부터 충분히 떨어질 수 있게 되는 것이 인간성장의 숨은 법칙이다. 

비단 공생기의 유아를 기르는 경우뿐만이랴? 남을 돕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남을 잘 돕는 방법으로 채택해 적용할 수도 있다. 내 것에서 나를 없애는 것은 살아 있는 나에서 나를 죽이는 것만큼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남을 돕기 위해 제공한 것에서 강렬하고 지속적으로 나의 요소가 작동된다면, 그것은 상대방에게 도움된다기보다 차라리 비용을 들여 방어해야 하는 독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독이 제거된 무해화된 재료를 제공하는 것이 진정한 도움이 되므로 남을 도와 주는 것도 상당한 준비와 작업이 필요하다. 내 몸을 네 몸처럼 내어 주는 것이 돕는 것이다. 그래서 돕는 일을 헌신이라고도 한다. 순국자들과 순교자들, 무명용사들, 익명의 기부자들, 암행의 선행자들, 묵묵히 자신의 일에 몰두해 사는 역군들 그리고 끊임없는 아이의 시중을 즐겁게 들어주는 평범한 엄마들의 헌신 덕분에 우리가 편하게 살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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