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토요단상] 중2 선언2019-08-02 09:3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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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에게 매를 들고 꾸중을 하는 이유는 부모 말을 잘 듣게 하기 위함이다. 말을 듣지 않는 것이 매와 꾸중의 아픔에 해당한다는 것을 알게 하려는 부모의 일방적 의도다. 이런 의도는 부모의 생각일 뿐 아이입장에서는 강요당하는 꼴이다. 설사 시키는 대로 했다 하더라도 아이 스스로 납득이 될 때까지는 등 떠밀려 하기 십상이다. 

등 떠밀려 하는 아이나 어른에게서 진정성 있는 행동을 기대하기란 참 어렵다. 대충 해치워버린다든지, 작은 구실만 있으면 무슨 핑계를 대고 안 한다든지 혹은 부모의 화를 돋우지 않기 위해 꾹꾹 참아가며 억지로 해드리는 꼴이 되고 만다. 아이는 공부해 드리고, 학교에 가 드리고, 말씀을 들어 드리고, 심부름도 해 드린다. 이유와 의미를 알아서 스스로 하는 행동이 아니라면, 그 행동이 지속되기를 기대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효과와 만족감도 얻기 어렵다. 오히려 억지로 시키는 부모에 대한 분노나 억눌린 자기에 대한 파괴적인 공격성을 쌓아가게 된다. 

아이가 어릴 때에는 이런 공격성을 드러내기 어렵다. 부모나 선생님, 주변의 어른들 모두 자신보다 힘이 세기 때문에 아이는 속으로 쌓기만 한다. 착하게 말 잘 듣고 묵묵히 따르며 두루 잘 지내는 것 같은 모양새로 살아간다. 키가 커질수록, 힘이 세질수록 아이는 자기주장을 점점 늘려간다. 이는 부모 말 안 듣고 반항하는 형태로 나타난다. 

큰 말썽 없이 자라던 아이가 본격적으로 말썽을 부리기 시작했다면, 말썽을 부릴 만큼 컸고 그동안 쌓인 공격성을 더 이상 참고 지내지 않겠다는 의사 표현이자 선언이 되는 것이다. 부모들은 소위 ‘중2 병’이라고 치부한다. 병으로 보기보다는 선언으로 봐야 한다. ‘중2의 선언’인 것이다. 병이라면 차라리 “아이가 병드는 줄도 모르고 부모의 위세를 떨쳐 왔던 부모가 병들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아이가 어느 날 갑자기 “학교에 안 가겠다”고 버틴다. “아니, 학생이 학교엘 안 가겠다니!” 부모로서는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왜 학교에 안가느냐”고 물으면 “무조건 가기 싫다”는 것이다. 부모는 납득이 안 가겠지만 아이는 학교에 가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한다. “가봤자 수업시간에 뜻 모를 이야기만 들어야 하고, 재미 없어 엎드려 한 시간을 잤는데 그다음 시간을 또 자야하는 형편의 연속이니 학교 갈 맛이 안 난다”고 말한다. 학교에 가야 하는 의미가 전혀 개발되어 있지 않다. 지금까지 나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부모님을 위하여 학교에 다녀 드렸기 때문이다.

어느 날 갑자기 아이가 공부를 안 하겠다고 앙탈을 부린다. 부모 눈에는 앙탈이겠지만 아이로서는 서투른 자기주장인 것이다. 지금까지 공부 안 하면 분노하기만 하는 부모가 분노하지 않게 아이는 공부를 해드려 왔기 때문이다. 자신이 크고 힘이 세졌으니 그 골치 아픈 공부를 꾸역꾸역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럼 무얼 하냐고요? 게임도 하고요, 채팅·인터넷 서핑도 하고요, 또래들과 어울려 다니고, 남친·여친도 만들어야지요. 억지 학원과 강제 공부 말고는 다 재밌어요. 나중에 커서 어떻게 되냐고요? 걱정 마세요. 부모님 재산 관리하면서 살면 충분하고요, 아니면 알바하면 돼요.” 그들의 말이다.

어느 부모든 아이를 잘 키우고 싶어한다. 부모가 겪은 것 중 가장 좋다고 생각되는 것에 의미를 부여해주고자 한다. 부여해주기보다 강요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니 문제가 된다. 부모의 가치관에 맞춰 살도록 부모의 세상에 밀쳐 넣는 식으로 키우면서 아이의 수준과 입장은 별로 고려해주지 않는다. 부모가 겪어봐서 옳은 것은 당연히 항상 옳은 것이라는 논리에 빠져 있기 일쑤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 부모가 아이였을 때는 적어도 30년 전이었다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 아이를 부모 세상에 살게하기보다 아이 세상에서 충분히 살아보고 천천히 어른 세상으로 나오게 하는 것이 잘 키우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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