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짝 핀 벚꽃이 짜증스러울 수도 있을까? 필자는 여태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바 얼른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얼마 전 우울증이 심하고 나이가 지긋한 부인을 뒷자리에 태워 목적지로 가고 있었다. 온통 꽃 세상을 이룬 벚나무 밑을 나풀나풀 떨어지는 꽃잎을 피해 조심스레 운전하였다. 연신 ‘아! 참으로 아름답다!’고 마음속으로 외치고 있었다. 그런데 아뿔싸! 차 안의 정적을 깨는 뒷좌석 부인의 목소리가 조용히 들려왔다. 부인은 “아휴! 벚꽃이 뭐 저렇게 짜증스럽게 피었어”라며 고개를 돌려버리는 것이었다. 벚꽃이 짜증스럽다니! 순간 귀를 의심했으나 이 부인이 깊은 우울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떠올라 다소 이해는 되었다. 그래도 그렇지, 이토록 예쁘고 아름답게 만개한 벚꽃의 장관이 짜증스럽다니. 한편 이해되지 않는 구석이 남아 있었다.
‘나는 벚꽃이 아름다운데, 저 부인은 어떻게 짜증스럽게 느끼지?’ 의문이 마음속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내가 본 것이 맞나? 저 양반이 본 것이 맞나? 누구나 자기가 본 것을 진실로 생각하는데, 누가 맞을까? 두 사람 다 맞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벚꽃의 정체는 무엇일까? 아름다운가? 짜증스러운가? 혹시 벚꽃은 짜증스러운데 아름답게 잘못 느끼고 있는 걸까?
마침 비둘기 한 마리가 무심히 공중을 선회하고 있었다. 비둘기에게 벚꽃이 어떠냐고 물어본다면 뭐라고 답을 할까? 비둘기는 무심하니까 “그저 희고 뿌옇다가 바람 불면 펄렁펄렁 떨어질 뿐”이라고 할 것 같다. 성철 스님께 여쭌다면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라고 하셨으니 “벚꽃은 벚꽃”이라 하셨으리라. 그렇다! 사람들은 벚꽃은 벚꽃일 뿐인데 저마다 “아름답네”, 심지어 “짜증스럽네”라고 말하고 있었다. 생각은 흘러 흘러 벚꽃은 벚꽃일 뿐이라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벚꽃은 벚꽃인데 아름다움은 어디에서 왔고 짜증스러움은 어디에서 왔을까? 그냥 벚꽃일 뿐인 것을 나는 아름답게 보았고 부인은 짜증스럽게 보았다. 느낌의 발원지가 각자의 마음속이라는 점이 확실하다. 나는 내 마음속의 아름다움을 벚꽃에 뿜어 붙여서 아름답게 보았다면, 부인은 자신 속의 짜증스러움을 벚꽃에 뻗쳐 짜증스럽게 본 것이다. 모두 자기 마음속을 바깥 세상에 비춰 보고 있는 셈이다.
조선 개국 당시 무학대사가 이성계에게 “부처 눈에는 모든 중생이 부처로, 돼지 눈에는 모두가 돼지로 보일 뿐”이라고 말했다. 결국 우리는 자기 마음속에 있는 것을 보며 산다. 아름다움이 많은 사람은 아름다움을 자주 보고, 짜증이 많은 사람은 짜증을 자주 보며 살아간다. 벚꽃을 본다기보다 벚꽃을 빌미로 자기 마음속을 본다고 하겠다.
벚꽃일 뿐인 벚꽃을 자기 나름대로 보는 방식은 미워하는 아이에게도 적용이 된다. 자식 중에 유독 한 아이가 밉다면? 그 아이는 그저 아이일 뿐이다. 부모가 그 아이를 밉게 본다면 벚꽃을 짜증스럽게 보듯이 아이를 밉게 보는 부모가 있을 뿐이다. 그 아이가 정말로 미운 아이라면 그 아이는 한 번도 안 미운 적이 없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누구에게도 미운 아이여야 한다. 엄마도, 아빠도, 형제도, 친척도, 친구도, 학교 선생님도 모두 미워해야 한다. 그러면 그 아이는 미운 아이가 맞다.
그런데 어디 그런가? 집에서 부모에게는 미운털이 박혔겠지만,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귀여워서 잠시도 눈을 떼지 못할 지경이고 친구들에게는 ‘짱!’이고 선생님께 칭찬도 받는 아이라면, 그 아이는 결코 미운 아이가 아니다. 미워하는 사람에게만 미운 아이다. 마치 벚꽃에 자기 짜증이 부착되듯이 자신의 미움을 아이에게 부착시키고 미워하는 것이다. 자기를 미워하는 모양새다. 아이만 미운 것이 아니다. 가까이는 남편도 밉고 아내도 미울 수 있다. 모두 자신의 미움을 확인하는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각자 최선 최고의 마음을 내보내는 것이 어떨까 한다.
김 영 호 <사>한국가족상담협회 대구가족상담센터 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