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토요단상] 사랑 당하기2019-08-02 09:3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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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주고 사랑을 받는 것이 말로 하기는 쉽지만, 막상 행동으로 실행되는 것은 그리 간단하거나 쉽지 않다. 사랑을 해주는 사람은 사랑을 주는데, 그 사랑을 받는 사람은 별로 기분이 좋지 않게 되는 경우가 상당수 발생한다. 오히려 받기 싫고 받아서 힘들고 괴롭지만 받아야만 한다면, 사랑 받는다기보다 사랑을 당한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사랑도 당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아빠나 엄마가 아이에 대한 사랑이 넘쳐나서 아이를 따라다니며 안고 뽀뽀해주고 쓰다듬어 주지만, 아이는 혼자 놀고 싶고 방해받고 싶지 않을 때가 있다. 어린 아이로서는 엄마아빠의 이러한 사랑을 피하거나 거부할 수 없다. 아이는 원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부모의 사랑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사랑 당하는 것이 된다.

당하는 기분은 좋지 않다. 밉고 괴롭고 짜증날 수도 있다. 필요한 것이 없을 때는 불편하고 아쉽지만, 필요하지 않은 것이 넘쳐난다면 귀찮고 증오스럽기까지 할 것이다. 넘쳐나는 정도가 도를 넘으면 아이는 엄마아빠의 감당할 수 없는 사랑에 엄습 당하고 침몰 당해서 자기 형체를 찾아 볼 수 없게 될 것 같은 위협을 느끼게 된다. 삼킴을 당하는 위협을 느끼는 것이다. 이런 정도라면 사랑을 당하는 수준을 넘어 가히 고문 당하는 상황이 되고 만다. 엄마아빠는 열렬하게 사랑을 해주었건만 아이는 그 사랑을 당하느라 죽을 맛을 보는 모양새가 된다. 

엄마아빠는 자신의 불타는 사랑을 발산하고 처리하여 안정감에 도달할 수신처인 아이가 필요한 것이다. 아이가 필요에 의한 사랑을 공급받는 게 아니라, 부모의 방출 욕구로 인한 뜨거운 마음의 처리장이 되어버린다. 심하게 말하면 엄마아빠도 자제하기 어려운 뜨거운 마음을 아이가 수납 해결해 주는 것이다. 엄마아빠의 문제해결을 위해 아이가 자연스럽고 명분 있게 이용되는 것이다. 문제는 부모가 아이를 이용했다는 점을 깨닫지 못하는 데 있다. 엄마아빠는 자녀에게 사랑을 엄청 주었다는데 아이는 받은 게 없다고 한다. 진정한 사랑을 받은 경험이 없는 아이의 공허는 일탈에서 오는 짜릿함으로 메우기 위해 비행으로 이어진다. 얼른 이해하기 어려운 결과가 빚어지는 것이다.

다 큰 딸을 아직도 귀엽다고 물고 빨고 싫다는 비명을 마다않고 쫓아다니는 무모한 아빠의 사랑. 이것은 아빠의 횡포다. 훌쩍 성장해버린 아들인 데도 엄마 품에 감싸고, 아이는 혼자 해보겠다는 데도 치마폭으로 휘감아버려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엄마의 대책 없는 충정. 이것은 엄마의 침범이다. 사랑의 횡포와 침범은 사랑 발송자의 의식적 의도와는 아주 다르게 자행되고 작용될 수 있음에 부모는 깨어 있어야 한다. 내게 좋은 것이 너에게도 딱 좋다는 식의 자기중심적이고 고도 근시안적인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 사랑을 주는 것도 받고자 하는 상대방의 사정을 당연히 고려해야 한다. 주고서도 인사조차 받지 못하는 경우가 이럴 때 생기는 것이다.

진정성이 부족한 사랑을 줄 때도 받는 아이 쪽에서는 충만해지지 않는다. 다소 내키지 않지만 사랑을 줘야 해서 준다든가 의무감에서 사랑을 제공할 때, 받는 아이 입장에서는 뭔가 부족하거나 허전하고 아쉬움이 가시지 않으며 야속하기까지 하다. 우선 아쉬워 사랑을 받기는 했지만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아이는 부모의 사랑을 좀 더 받아내기에 골몰하게 된다. 부모의 사랑이 충분해야 떠날 수 있는데, 부족한 사랑을 채우기 위해 찔끔찔끔 내주는 부모에게 아이는 계속 매달려 있게 된다. 감질나는 사랑을 당하면 예속되고 만다. 부모에게도 사랑을 이 정도밖에 못 받는데, 부모 아닌 다른 사람에게라면 그 정도 이상의 사랑을 받을 수 있다고 기대하지 못한다. 필사적으로 부모에게 매달려 사랑을 애걸복걸하는 생활을 하게 된다.

이제까지 지내봐서 더 이상 부모의 사랑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알 수도 있으련만, 사랑이 부족한 아이는 현실적인 사실보다 환상의 기대에 기댈 수밖에 없는 입장이 된다. 부모는 의식적 의도와 사뭇 다르게 정신적 식민지를 확보하는 음모를 성취하고 있는 셈이 된다. 사랑을 당한 끔찍한 결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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