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토요단상] 망년보다는 송년2019-08-02 09:2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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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해서 잊어야 한다면 망년이고 신나게 ‘숑숑~’ 보낸다면 송년이 된다. 망년이 되어버린 어느 해는 그렇지 않았던가. 만족스럽지 못한 한 해를 망년으로 결산하다 보니 기어이 끝까지 망할 일을 하고야 만다. 그만큼 후회했으면 됐지, 왜 또 그렇게 술을 퍼마시고 정신을 잃고 다음 날까지 괴로워하며 지긋지긋하게 망하는 일이 생겨야 하는가. 돈 잃고, 건강 잃고, 체신 잃고, 친구 잃고, 자긍심 잃고, 직장까지 잃을 문턱에 서기까지 한다. 싫어하고 우려하고 피하려던 일이 이렇게 손쉽게 다시 일어나다니….

올해는 신났다. 메르스의 어려움이 있었지만 잘 견뎌 넘어갔다. 가족에게 경사가 몇 건 있었고, 모두 건강하고 재미나게 잘 지냈고, 작년보다 은행 잔고가 늘었고, 내년이면 진급이나 확장이 예상되고 현재에도 잘 나가고 있으면 송년이 된다. 기쁨을 나누고 무사함에 감사하며, 서로 잘 지내고 있음을 고마워하기 때문에 연말을 지내는 모습이 야단스럽지 않다. 가히 희망을 품을 만하고 신나게 살아 복을 지으며 보낸다. 

망년을 보내는 사람은 망년회에서 한을 풀듯이 먹고 마신다. 마감한다는 의미에서 한판 잔뜩 벌린다. 한 해 동안 쌓였던 불만을 일시에 해소하고 얻지 못했던 것을 한꺼번에 얻어 만회하려는 듯하다. 마치 올해 불운의 원흉을 공격해서라도 이겨보려는 것 같다. 공격해서 이겨야 할 대상은 따로 있는데 엉뚱한 상대에게 못 이룬 한을 푸는 것과 같다. 지금까지 이길 수 없다는 것이 입증된 대상을 이기겠다니, 망하는 것이 거듭될 수밖에 없다.

잘 못하는 사람에게는 잘 못하고 있는 요인이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 코앞에 놓인 유혹을 물리칠 수 없는 나약함, 왠지 이번에는 한 방 터질 것 같은 망상을 지울 수 없는 취약함, 자신의 목표를 갖지 못하는 공허함, 가족이 보내주는 성원과 기대를 깔아뭉개버리는 무모함, 망할 짓 하는 게 자신을 벌주고 학대한다는 걸 모르는 무지함, 그 무지함에서 나오는 대책 없는 박력까지. 망년을 보내는 사람은 망하기 좋은 조건을 두루두루 갖추고 있으며 매년 지속적으로 반복하고 있다. 

새해에는 잘 할 거라고? 어떻게 잘 할 수 있나. 해만 바뀌었다고 취약한 자신이 그냥 바뀌지는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마음만 잘 먹으면 잘 할 수 있다는 잘못된 신념인 망상을 가지고 있다. 불편한 진실은 마음을 잘 먹어도 자신은 잘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반복되어 왔고 같은 방식으로 작용한다는 것을 깊이깊이 깨달아야 한다. 깊이 깨달아야 한다는 의미는 깨닫는 것에 그치지 않고 행동으로 실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실행으로 이어지는 깨달음만이 진정한 깨달음이다.

실천 없는 깨달음은 자기를 속이는 것이다. 망하는 길로 인도하는 파우스트의 꾐이다. 깨달음의 실천은 단호해야 한다. 하다못해 삼일에 한 번씩 작심이라도 해야 한다. 지금까지 안 해본 마음가짐과 행동을 해야 하기 때문에 서툴고, 어색하고, 힘들다. 앓느니 죽는다는 식으로 자꾸 실행을 포기하고 싶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실행을 강행해야 한다. 

담배 끊는 일이 그렇고 술자리 거절하는 것이 그렇고 게임이나 다른 중독증에서 헤어 나오는 것이 그렇다. 망하는 상태에서 흥하는 상태로 나오는 일일진데 어찌 힘 들이지 않고 공을 세우지 않고 얻을 수 있겠는가. 앓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다면 정말 죽는다. 꼭 예전처럼 되돌아가고 되풀이되고 그래서 망한다. 망년회만 찾아온다. 누구를 탓하랴? 내 자신의 작품인 것을. 송년의 시기를 맞는 이들에게는 그동안 쌓아온 공로를 치하드린다.김영호 <사>한국가족상담협회 대구가족상담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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